산행기

◈2004년 2월 2일 ◈ 계방산

binjaree 2009. 6. 16. 13:34

 

 

 

 

 

 

 

 

 

 

 

 

 

 

 

 

 

 

 

 

 

 

 

 

 

#1 5:20분에 맞춰둔 알람이 울린다

함께하려던 일행이 사정으로 빠지게되자 우리부부만의 산행이 되버린 탓에 슬그머니 이 시간에 그 먼 길을 나서야 하나란 생각이 든다

 '한번 가 본 곳인데,아마 눈꽃도 볼 수 없을껄,둘이 나서기엔 너무 멀지....'

갖가지 생각은 따스한 잠자리와 더불어 날 미적이게한다

 "당신 산에 안 가?"

 란 내 물음에 깊은잠에 푹 빠진 듯 보이던 그는 그래도 "으응~가야지" 라며 대꾸한다

그래 가자 배낭도 꾸려두었는데..이렇게 둘만의 산행이라고 흐지부지 그만둔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다

 

#2 중부를 달려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도 주변 산은 눈이 거의 없어 봄이 오는 듯 아니 늦가을인듯 별 볼품이없다 쏟아지는 졸음을 주체못하고 꾸벅이다 문막에 들러 황태해장국을 둘이 나눠먹고 속사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버린다

 

 #3 아랫삼거리 상가에 운두령을 넘는 차편의 시간을 물으니9:30분에 지나간단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그 상가에 복술이라는 믹스견은 사람을 만나 미치게 좋다는듯 우리 부부에게 매달리며 난리부르스다 날 반겨주니 귀엽긴한데 짜식~목욕좀 하지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

 달랑 승객 한명뿐인 버스에 올라 구불구불 지그재그 운두령으로 향한다

 몇해전엔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넘쳤는데 설마 오늘 계방산 통째로 전세내는거아냐?

 

 #4 차에서 내리니 막 계단을 오르는 예닐곱 남자들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태백 다음으로 겨울산행지로 꼽히는 곳인데 토요일이라고 사람이 없으려고..

등산화끈을 다시 조인 후 급경사 계단을 오른다 폐부 깊숙히 꽂히는 바람이 상큼하다 멀리 얼핏 보이는 산들이 구름속에 잠긴듯하다 서둘러 올라 시야가 트이는곳에서 저 장관을 감상하리라

 

#5 앞선 그 사람들은 이내 시야에서 멀어져가고 둘만의 산행이라 여유롭다

다리쉼을 하며 숨을 고르고 눈이 별로없음에 아쉬움을 토하며 걸음을 옮긴다

몇해전 처음 이 산을 찾았던때는 눈이 하리께까지 차올라 참으로 장관이었는데 푸르게 드러난 산죽을 보노라니 새삼 겨울가뭄을 실감한다

앞선이들은 벌써 내리막을 지나 저 앞 급경사를 오르고 있는게 보인다 멀리 뒤이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는듯 하고...

'오길 정말 잘했지 그 잠깐의 잠 때문에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또 얼마나 지루했을까 이 상큼한 공기냄새, 땀흘리며 걷는 길도 즐겁기 그지없다

 

#6 우와아~~ 우헤헤 히히...나중엔 눈물까지 찔끔... 정상 못미쳐 조망이 확 트이는 헬기장에서의 내가 내 뱉은 갖가지괴성이다

 일망무제 겹겹 첩첩인 산들이 발아래 그림같이 펼쳐있으니 이게 실경인가 허상인가 꿈인듯 감격스럽다

 구름위로 드러난 산군들이 시선닿는 그 끝까지 겹친채 멀어져가니 과연 이 나라 5번째 높은산이란게 실감이난다 좋은 날씨탓에 서울까지 보일듯 시야가 좋다 전문가라도 되는듯

 

  그는 삼각대까지 받쳐놓고 작업에 열중이고 그가 렌즈에 풍경을 담는사이 난 커피 한잔 마시며 눈에 가슴에 그 실감안나는 풍경을 새겨넣는다  살아있어서 참 좋다  산에 오를수 있어서 너무 좋다....

 

  #7 헬기장에서 시간을 보내는사이 뒤이은 등산객들이 올라서기 시작한다

땀에 젖은 이들도 모두 얼굴엔 웃음가득이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인사를 건네며 산이 하나되게해줌을 느낀다

드디어 정상!

멀리 눈을 인 점봉산 너머로 설악이 하늘금을 그리고 그 앞으론 방태산쪽의 거대한 산군이 버티고 옆으론 오대산의 구릉들이 펼쳐지고 반대편으론 발왕산 용평스키장 슬로프까지 눈에 들어온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라면을 끓여 요기하고 지난번 내려섰던 능선길을 버리고 노동계곡으로 하산로를 정한다

나이를 알수없는 주목이 버티는 갈림길엔 제법 눈이 쌓여있다 길은 내려갈수록 순해진다

여름이라면 이끼낀 바위들이 제법 미끄러울텐데 지금은 그위로 눈이 겹겹이 덮혀 오히려 걷기가 편하다

꽤 긴 계곡을 벗어나 이승복생가터를 지난다

이웃의 증언에의해 복원된거라던 그 화전민의 귀틀집은 공비가 내려옴직도한 깊은 오지였다

손바닥만한 방 두칸엔 장판대신 멍석이 깔려있고 벽은 도배도 안된채 흙을 드러내고있다

감자나 옥수수도 배불리 먹지못하고 살았을 그 가여운 이들에게 행해진 짓은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인간의 짓이 아니었었다

그 아이가 다니던 길목 여기저기엔 화전민의 흔적은 자취도없고 맑은공기,물을 찾아온 외지인들의 팬션이 어색한 그림처럼 자릴잡고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차를 세워둔 아랫삼거리로 향하는 눈덮인 길을 걸으며 그 팬션이 이질감을 주며 자릴 잡았더라도 그자리에 있으므로해서 그 땅에 도움이 되는일이길 부질없이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