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그 단조로운 소묘

난 정말 괜찮은데...

binjaree 2009. 6. 15. 18:57

2003.12.21  (59.7.58.140)

 12월19일 일년에 한번이었는지 아니면 두번인지 불규칙적인 남편의 승진심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며칠전부터 유난히 초조해 했는데 결과는 안좋았습니다

어제 오후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만을 듣고도 짐작이 갈 만큼 낙심해 있더군요
'괜찮아 뭐 그깟것 가지고그래 당신이 승진못해도 아무도 원망안하니 너무 낙심말아' 이렇게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나야 그깟것이라고 말할수 있어도 그는 절대 아닐테니...

"나쁜넘들 무슨기준으로 심사를 한거야 서열1번이라더니 어찌된거야' 이렇게도 할수없었지요 직장 이야기를 별로 하지않아 기준이 어떻게 되는건지 알 수 없었고 서열1번이란것도 주위사람을 통해서 였으니...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못해 머뭇거리다 전화 끊으라는 그의 말에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뿐.. 답답했습니다
나조차도 이번엔 당연히 되리라 여겼으니까...
그냥 기다리지 왜 저리 초조해할까 생각하며 발표때까지 느긋하라고 말하곤 했었죠
고급공무원도 아니고 그가 올라갈 끝자리가 어딘지 뻔히 보이는 이 시점에서 몇 달 늦춰진다한들 어떠하랴만 본인은 사표를 내고 싶을만큼 낙담이 큰가봅니다
난 정말 괜찮은데...
설령 정말 운이없어 이 직급으로 퇴직을 한다해도 그의 퇴임식에선 정말 수고했다고 고마웠다고 우리 세식구 큰절이라도 올릴텐데......

자정이 가까운 시간 동네 치킨집에서 절 부르더군요
평소 가깝게 지내는 동료가 위로차 와 계셨죠
이번 심사는 이해가 안된다고,전근 온 사람에게 텃세가 심하다고 그 분 또한 불평이셨지만 위로의 말이겠지요
평소 소주세잔이면 거의 인사불성인 사람이 연거푸 잔을 비우더군요

가뜩이나 추운 날씨 탓에 절로도 움츠러드는 밤, 비척이는 걸음을 떼놓는 그의 뒷모습.축처진 그의 어깨에 가슴 한켠이 시렸습니다

이럴때 내가
'그 동안 수고했어요 이젠 내가 가족을 책임질테니 당신은 보란듯 사표내고 하고픈 일 찾아봐" 이렇게 말할수있는 힘이 있는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존심이 형편없이 구겨지고도 가족을 책임지기위해 내일이면 다시 그 책상앞에 앉아야 할 그 에게 참 미안하네요
때론 미워하다가도 이런일이 생기면 동질의 아픔을 느끼게되니 미움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란걸 수긍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