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그 단조로운 소묘

아주 오래된 날들과의 조우

binjaree 2014. 12. 6. 15:31

 

 

 

 

 

 

 # 첫 추위가 제법 오래간다 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주말인 오늘 오랜 친구의 혼사에 다녀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애써 매만진 머리가 맘에 안 든다고 동동거리는 친구를 보자니 정성을 다 해 준비하고 노심초사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막상 닥치면 왠지 부실하진 않을까 싶은 염려스러운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으므로

 

지난봄 내가 혼주일 때는 정작 잔치를 잘 치르기나 한 건지 혹 결례가 되는 일은 없었는지 걱정이 앞서는 마음이었지만

이제 한 발 물러서서 편하게 사돈과 나란히 선 친구를 보니 새삼 여러 마음이 들었었다

그 애의 단발머리 시절이 눈앞에 삼삼한데 어느덧 선한 인상의 사위를 맞고 있으니 우리가 보낸 세월이란 게 참 아득도 하고 벅차기도 했었다

그러나 참 기쁘고 고맙다

어린 소녀가 처녀가 되고 또 아내가 되었으며 엄마가 되는 것을 먼발치로 바라볼 수 있었으니

 

그 자리에선 수십여 년 만에 보는 동창들도 볼 수 있었다 사십 년, 삼십 년, 이십 년 만에 본^^*

길에서야 당연히 몰라보고 지나치겠지만 이름을 듣고 보니 그 애들의 옛 모습도 어제 인양 기억났었다

신기한것은 풋풋한 단발머리에 살폿 서리가 내리고 오래지 않아 耳順을 맞을 텐데도 그리 늙어 보이지 않더라는 거

우리는 저마다 영롱했을 봄을 보냈겠고 푸르렀으나 늘 갈증이 일던 여름을 살았을 테며 이제 모두 가을이다

 

그러니 이젠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관찰하지 않으며 비교하지 않는다

이 나이를 먹도록 어떻게 고운 것만 보고 살았을 거며 원하는 그림만을 그려왔겠는가

삼십여 년 만에 본 친구는 사별을 했단 이야기를 오래전 풍문으로 들었으며

이십여 년 만에 본 친구는 이혼을 했고 재혼을 한 남편과 같이 왔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아무도 거론 않는다

그냥 단발머리 시절로 돌아가 어디서 사는가를 물었고 옛 은사님들과 몇몇 친구들을 이야기했으며 다음에 다 같이 만나자는 인사를 나눴지만

지켜지면 반갑고 그냥 이대로라도 밤잠이 어렵지는 않을 터이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퍼즐 맞추듯 맞춰보며 그걸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음으로도 족하지

 

그러나 이렇게 끄적이자니 까마득 가라앉혀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았던 그것들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일렁인다

우리가 살던 서울 그 변두리 동네가 그리워 찾아가 봤다던 한 친구의 말 때문에

지금이야 으리 번쩍 한 빌딩들이며 값비싼 아파트들이 즐비해 서울에서도 부촌에 속하는 동네가 되었지만 나 어릴 적 그 동네는 사대문안에서 오는 버스의 종점지역이었다

강 건너 워커힐이 먼 이국의 풍경처럼 생경하던 그곳은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난 그곳을, 멀지도 않은 그곳을 찾지 않는다 이십 대 이전에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도

망해가다 이제 더 망할 것도 없어진 집안의 맏딸

수업료 미납으로 채근을 받다 기말고사 기간에 결석을 하곤 담임께 난생처음 종아리를 맞았던 기억(수업료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나 날 도와주시던 분이었으나 멋대로 결석을 해서였고 부모님에게도 맞아 본 적 없던 종아리는 피멍이 들었었고 반창고를 붙여도 뻔한 상처로 인해 하교는 또 밤이 되었었지)

삼 년을 내리입은 교복 치마가 졸업을 앞두고 헤져서 기워 입고 그게 창피해 늘 해가 진 후 가방을 그쪽으로 들고 하교를 했던 기억

저녁을 지으려고 쌀독을 열어보니 쌀은 없고 분명 약주에 취해 현실을 잊고싶었을 아버지는 귀가 전 모든 걸 해결해주던 엄마마저 오리무중

그래서 절망을 했던가 울분에 떨었던가 ㅎㅎ

그때 마침 한 친구가 찾아왔었고 내 꼬락서니를 보고 가더니 봉지에 쌀을 담아다 주었었다

난 울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에 몇 방울 피는 흘렀으리 엄마는 늦은 밤에 쌀자루를 이고 돌아오셨고 봉지쌀을 담아 다 준 친구가 오늘 혼주였다

언젠가 이야기를 했더니 이 친구는 기억을 못하데 ㅎㅎ

그래서였다 그곳을 버린 건

다시는 피 흘리지 않으리라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며 한 남자를 제물 삼아 도망치듯 떠나온 곳

(미쳤는가 봐 그 남자에게도 안한 이야기를 이런 곳에 펼치다니 하긴 그분은 이제 퇴직을 하셔서 사무실에서 슬금슬금 이곳을 엿보지  않으니까^^)

어리석은 인간의 말로가 다 그러하듯 뾰족하면 뾰족한 대로 날카로우면 날카로운 대로 모든 게 다 받아들여졌던 곳을 떠나오니

뾰족한 것을, 날카로운 것을 억지로라도 다듬고 마모시켜야 할 세상으로의 자리 바꿈이었을 뿐 

 

* 어젯밤 누웠다 아무래도 지나친 푼수인가싶어 아래 부분은 지웠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 글을 읽은 분이 24분이나 계시네요 그래서 다시 복원합니다 (조회수에 제가 들락인것도 포함되는 건 아니겠지요^^)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도시 빈민의 삶, 그 아린 기억은 평생의 그늘이 되어 제 곁을 떠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이 나를 성장시켰고 아주 쬐끔은 겸손하게 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같은 빛깔의 란도셀을 메고 양장점에서 맞춘 브라우스에 원피스를 입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너덧 살 어린 딸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판사라는 직업을 추천하시던 아버지

그분은 약간의 돈만 생겨도 우리 형편에 말이 안되던 바나나같은것을 사들고 오셔서 엄마를 기함시켰고

유독 샘이 많아 남에게 지는 걸 엄청 싫어하던 내 어머니

오랜만에 만난 옛 이웃이 냉장고를 장만했다고 자랑하는데 우린 진작에 샀단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곁에 있던 사춘기의 나를 늪에 빠트리던 그 분은

공부에 필요하다며 3박4일 들볶아도 끄떡 안하시다 친구를 데려가 이 애는 진작 샀다고 말을 하면 영한사전 값을 주셨습니다

 

어리바리, 칠렐레 팔렐레 이렇게 드러내고 한 세상 살아가지만 뭐 괜찮습니다

아직 숨이 덜 죽은 뻣뻣한 이 모가지는 그 분들의 끊임없던 뜨거운 그 무엇, 지극했으나 서글픈 유산의 殘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