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3년 6월 15일 ◈ 설악산 공룡능선

binjaree 2009. 6. 15. 14:41

 

 

 

 

 

 

 

 

 

 

 

 

 

 

 

 

 

 

 

 

 

 

 

 

 

 

 

 

 

 

 

 

 

 

 

 

 

 

 

 

 

 

 

 

 

 

 

 

 

 

 

 

 

 

 

 

 

 

 

 

 

 

 

 

 

 

 

 

 

 

 

 

 

 

 

 

 

 

 ◈ 늘 꿈만 꾸던 길이었습니다 언제나 그 길을 밟아볼까 하면서.
마등령 오름길이 무척 가파르다던데, 공룡능선으로 들어서면 탈출로가 없다던데, 지난주에도 몇 사람이 헬기 신세를 졌다던데 등등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지만 망설이다 보면 늘 흐지부지되었기에 마음먹은 김에 그대로 진행을 합니다

이제 입대가 한 달도 안 남은 큰아이와 그 길을 꼭 함께 하고 싶었거든요 푸른 나이에 아들이야 나중에라도 마음먹으면 그 길이 가능하겠지만 2년여를 떨어져 보내야 하는 아들과의 추억 만들기를 속셈에 넣은 엄마의 계략(?)이었지요

토요일 이른 산행을 위하여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금요일 오후 일산에서 출발했는데 수,목요일 내리고 그친다는 비가 토요일은 전국적으로 내린다고 예보가 바뀌더군요
달무리가 지면 비가 온다던데 숙소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지 않는 잠을 청했었지요

4시에 눈을 뜨고 도시락준비며 아침준비에 분주한데 베란다로 나갔던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빨리빨리!"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건너편 야산 밑 좁은 길로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두 마리가 뛰어가고 있었지요
세상에 아무리 설악산 근처지만 콘도가 밀집해 있는 이 근처까지도 야생동물이 뛰어가다니요 순간이었지만 너무 신기했었죠

서둘러 준비를 했지만 산행을 시작한 건 6시가 다 돼서였고 매표소를 지나며 보게 되는 큰 부처님께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오늘 산행이 안전하기를 빌었습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려는데 트럭이 지나가며 비선대까지 태워다 준다네요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어진 참이라 트럭 뒤에 올랐었는데 얼마 안 가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나게 되니 조금은 창피하기도 하드라고요^^

비선대에서 천불동과 나뉘는 길을 지나 금강굴이 올려다보이는 곳까지 금방 올랐죠
오래전 금강굴 앞 철계단에서 현기증이 나 주저앉으며 남편과 아이들만 올려보내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날의 나는 오늘의 나를 전혀 생각조차 못했는데...
오늘은 그곳을 지나 험하기로 소문난 공룡능선을 향하고 있으니...


전주에서 왔다는 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데 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죠
아이들은 물론이고 저조차도 우중산행은 처음이니 난감했는데 이 길을 밟기 위해 그 먼 길을 왔는데 싶어 그냥 진행합니다 제발 그쳐주기를 간절히 빌며...
몇 분을 만났는데 비 때문에 망설이던 그분들은 끝내 발길을 돌렸는지 다신 만날 수 없었고요
조금씩 오던 비가 제법 내리자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만 가잔 말이 나오더군요
집에 있던 작은 애에게 전화를 해 예보가 어찌 바뀌었는지 알아보라고 했지만 강수확률만 말해주더라고요 기왕 젖은 거 마등령까지만이라도 다녀오자며 아이들을 설득해 다시 올랐습니다

아이들에겐 우의를 입히고 우리 부부는 고어텍스 재킷을 걸쳤는데 이미 젖은 터였지만 춥지는 않았지요
그사이 홀로 산행하는 분을 또 먼저 보냈고요
비가 와도 가끔 운무 사이로 보이는 천불동 쪽 경관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니 힘든 줄도 모르고 마등령에 도착했습니다

오세암 갈림길 돌탑 위에 독수리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 사이 비는 그쳤는데 곧 이라도 쏟아질 듯한
 어두운 하늘을 보며 아이들은 여전히 우중 산행을 걱정하며 발길을 돌리자고 했죠
무리한 산행보다는 안전산행이 우선이라 생각하며 거의 돌아서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설악의 암봉들은 안개 사이로 얼핏 언뜻 얼굴을 내밀며 왜 마음을 빼앗아 가는지...
결국 마등령까지 오는데도 3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우리 가보자 정 힘들면 희운각서 자고 내일 아침 내려가자며 겨우 설득해 다시 산행을 시작했어요 그 덕분에 마등령구간에서만 한 시간 정도를 허비했죠 갈 길도 바쁜데..
아들 친구는 이미 발이 풀렸다기에 배낭을 달라고 했더니 얼른 주더군요^^


드디어 공룡의 등줄기로 들어섰습니다
비 때문에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진 않았지만 그만큼으로도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설악이야 넘 멋지다 등등 감격에겨운 감탄사가 연신 흘러나왔으니...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수 없는 길이었지만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구요
1275봉을 도착할때가 되가는것같아 반대방향에서 오는 분께 물었더니 건너보이는 암봉이라고 알려주시더군요
아이고 맙소사 저 길을 어떻게 올라간담 수직절벽같은 길이네...란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막상 곰한마리가 지키고 있는것같은 그 길을 오르자니 오를만했었죠


그 곳 안부에서 가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람쥐가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근처를 오가길래 쵸코렡을 주었더니 얼마나 잘먹는지...
던져준 밥보다도 외제쵸코바를 더 좋아하니 사람들때문에 입맛이 바뀐 다람쥐였던가봐요
1275봉 내림길은 가파른데 잡을것도 마땅치 않아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섰었죠
겨울이면 저 같은 초보는 정말 난감할 구간이더군요
건너 보이는 천화대 내림길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내려오더군요
비때문인지 몇사람 못만났는데 그날 만난 제일 많은 사람들이었죠
그분들을 지나쳐 숲길로 들어섰는데 또 비가 쏟아 지더군요 소나기로 내려 바지마저도 몽땅 젖어 걷기가 불편해졌구요

젖은 채로 신선대 부근에 도착하니 잠시 해가 나더군요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아스라히 바라보이는데 그 감격스러움이라니....
비로 깎아내고 바람으로 다듬어 놓은 조물주의 작품을 평범한 인간의 세치 혀와 둔한 글로 표현하자니 비록 그 느낌의 한 부분일지라도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능선에선 안개에 쌓인 내설악쪽과 철옹성같은 용아장성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 모습을 확연히 들어내지 않으니 안타까울뿐 이었고 능선을 걷는동안 시종일관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대청봉은 비로 인해 모습을 감췄더군요
구름에 쌓인 그곳을 미루어 짐작해 볼 뿐...
무너미고개로 내려서니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비에 젖은 철계단이 조심스러웠지만 연이은 폭포와 탕들로 인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주위를 두르고있는 기암 괴석 암봉들로 인해 비오는 천불동은 선경에 든 듯 신비로웠습니다
비선대에 도착하니 6시20분쯤되었는데 마등령에서 지체했어도 그러저럭 예정시간에 산행을 마치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나의 아들도 그의 친구인 김군에게도 오늘 이 길은 길고 고단한 하루였을테지만 좀 더 세월이 흐른뒤 설악을 찾게되면 우리와 걷던 오늘을 떠 올리며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주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