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요일은 한주중에 제일 부지런히 보내는 날입니다 휴학과 졸업으로 적이 없어진 두아들이 내 하릴없는 일상에 합류해 세 모자간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매일을 보내니까요 그나마 일요산행은 새벽에 일어날 기회를 주며 하루를 길게 살 방법을 찾게 하네요 겨우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날이지요 후~
각설하고 엊그제 일요일 강원도 평창,영월,횡성 세군의 경계선상에있는 백덕산(1350m)을 다녀왔습니다 영동고속도로변 청태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능선상에 사자산을 일으키고 백덕산을 세웠답니다 5대적멸보궁에 하나라는 법흥사가 있는곳이구요 봄에 나물채취를 위해 서너번 다녀온적 있었지만 늘 언저리 였었고,겨울산행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라 한번 쯤 가보고 싶기도 했지요 산높이가 만만치 않았지만 문재터널에서 시작하니 그 높이만큼 득을 보겠지란 약삭빠른 생각도 들었구요 6시 집을 나서서 막힘없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서둘러 준비마치고 능선을 향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주능만 잡으면 그 다음부턴 룰루랄라 도로같은 능선이 이어질줄 알았죠 하기야 문재가 800고지라니 표고차를 높이는곳이 반드시 있겠지란 생각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허위적올라 임도를 만나고 잠시 임도를 따라걷다 능선을 향해 오릅니다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여전히 눈덮힌 강원도 산길이었구요 꽤많은 이들이 산을 찾았드라구요 러셀이 되있는 길은 한사람만이 가야 할 일방통행이라 잠시 숨을 고르려면 눈속에 발을 묻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겼지요 가파르지 않았지만 내내 오르막을 올랐습니다 이내 숨이 차오르고 땀이나기 시작하네요 앞선 우리팀은 보이지도 않고 친구와 둘이 걷자니 더더욱 느긋해져 좋았지만 갈수록 뒤쳐지게 되네요 두어번 봉우리를 넘어서니 헬기장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거기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죠 땀을 식히고 바라보니 맙소사 정상이 아득하게 보입니다 "오늘 저기를 어떻게 가나? 불가능하겠군"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더군요 몇년치 월간 "산"을 뒤져도 자료가 없길래 인터넷으로 대충 확인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막상 바라본 정상은 너무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니 지레 지쳐버리더군요
한번 입에 댄 물은 더더욱 갈증을 유발하는건지 목은 계속 타오고.... 차라리 정상이 보이지 않는편이 더 나을뻔 했습니다 정상은 내가 진행한만큼 뒤로 물러나는것처럼 길은 전혀 좁혀들지 않는것같고 발엔 추라도 매단듯 뗄수록 무거워지더군요 요며칠 속을 버려 내내 불편했는데 여전히 나아지는 기미도없고 갈증으로 일행이 건네주는 과일과 물을 마셔대니 더더욱 불편해지드라구요 당재에 도착하니 정상 2.3km란 표지판이 있는데 차라리 안보느니만 못하고 이대로 혼자 하산을 할까란생각이 들기 시각했었죠
사자산은 언제 지나쳤는지 알지도 못했고 다리쉼을 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잠시 숨을고르며 서 있노라면 눈앞이 아득해지기까지 하더군요 이러고도 또 다음주면 산에 갈수있을까? 란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다신 안 와야지'란 생각이 안드는걸보면.......
그래도 해 냈습니다 기다시피 갔어도 일행과 함께 정상에섰습니다 멀리서 보면 쌍봉으로 보이던 정상은 여러명이 서있기도 불편한 암봉이었고 표지석은 땅에 닿을만큼 작았지만 근처에 더이상 높은봉우리는 없었습니다 봄같은 날씨에 개스가 낀건지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진 않았지만 가물가물 치악도 보이고 발아래 강원도 산골모습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껏 지쳐있던 나는 어디로 간걸까요? 기운이 넘칩니다 대여섯이 설 수 있는 옆 암봉위에 올라가 아찔한 발아래를 굽어보며 그곳에 간이의자를 펼치고 과일을 들고있던 세분에게 "방빼!"라는 압력까지 넣었거든요 물론 속말로요 기념사진을 찍고 더 있다간 우리도 방빼란 말을 들을것같아 서둘러 점심을 들 자리를 찾아 내려왔습니다
버너에 찌게가 끓어나고 모아놓은 세집의 찬은 풍성합니다 거렁뱅이가 되어버린 가여운 박새가 누군가 떨군 라면가닥을 물고 나뭇가지위로 오릅니다 물로 배를 채운덕에 시장끼도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밥을먹습니다 그나마 지고가긴 힘들었지만(물론 제가 진건 아니지만요) 찌게가 있으니 마른입에 한결낫더군요 곧 산불때문에 화기를 들고 입산할수 없을테니 버너를 사용할날도 얼마 안남았지요
과일과 차까지 마시고 무거워진 몸으로 다시걷자니 불편했지만 내림길엔 숨이 덜차니 한결 수월합니다 운교리 방향으로 길을잡아 인적이 없는 계곡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눈이 만만찮게 쌓여있더군요 눈짐작으로 제 허리높이 정도는 족히 되겠더라구요 앞서간 고마운이들이 길을 내주어 편히 걷지만 처음 눈을 밟아다져 길을 낸 그는 누구였을까요? 눈때문에 전 어디가 길인지 숲인지 짐작도 안갈테니말이죠 내가 살아내는 삶의 길목마다에도 반드시 지표가 될 사람이 있으련만 되잖은 어리석음에 흉내내는것조차 외면하고 삽니다 얼마만큼이나 더 다쳐야 정신이 들려는지요
아이젠도 필요없는 눈덮인 계곡을 걸으면서도 제눈은 쉬임없이 나뭇가지끝을 살핍니다 그 눈덮인 계곡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지던걸요 양지쪽 두릅나무엔 새순이 자라나기 시작했구요 버들강아지도 윤기자르르한 통통한 몸을 햇살에 맡기고 있었지요 와하!! 겨우내 기다리던 봄이 문앞에 왔나보네요 봄이 오면 무엇을 하죠? 정말 무엇을 해야할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