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詩

가을 저무는 강변에서

binjaree 2012. 11. 1. 14:33

                   

 

요새 난 자꾸 나갔다

산다는 게 가끔은 소슬한 한기가 드니

내 안에는 없는 볕을 찾아서

 

문밖은 흥건한 가을이었고

어딜 가도 철철 넘치는 볕이 있었다

바람 지나던 나뭇가지 새론 비 듣는 소리가 나곤 했고

가끔 돌아보면

농익은 이파리들은 허공에서 절로 절로 스러져갔다

 

그런 저녁이면 강으로 가고 싶었다

인적 끊긴 둑길에 앉아 빛바랜 갈대의 푸석한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문득

저 저문 강변으로 너울너울 걸어나가

야물게 익어 갈 어둠에 갇혀 누구도 없이 울고 싶었다

갈대는 이상하다는 듯 어깨너머로 기웃거릴 테고

강물조차 발끝을 건드리며 가던 길을 머뭇거리겠지만

 

그렇게

그렇게

말끔히 씻어낸 뒤엔

짧은 기도를 하고 싶었다

여전히 내 안에는 순교를 강요받는 더운 피가 흐르니

 

내게 티끌 같은 죄지은 자를 용서하겠노라고

그러니 태산 같은 내 죄도 부디 용서하라고

 

제 피로 저를 씻고

제 울음으로 투명하게 맑아지면은

어둠 속에서도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던 강물로 합쳐져

떠나온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낮 동안 곁에 머물던 온기마저 사윈 저녁

빈 들을 거쳐온 마른 바람은

이렇게 잠시 깃들다 가면 되는 거라 일러주며 내 안에 스며들어 서걱이는데

사는 건 그저 흉흉한 풍문만 같아서

가을 저무는 강변에서 그만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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