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詩

김장하기

binjaree 2012. 12. 3. 18:08

 

 

 

 

 

해를 쫓아 맴돌았던

별 처럼 총총하던 

아득한 유년의 날들 위로

 

푸릇하기만 해서 어설프던

자취마저 어렴풋한 섧던 젊음 위로

 

그리고 이제

허투루 나를 굴린 세월에 엉성하게 마모된 푸석한 가을

그 위로

살아온 날들이 만들어낸 하얀 결정들이 쏟아진다

 

나를 베고 남을 다치게 했던 서슬 퍼런 것들은 시간 속에서 숨이 죽는다

풋풋한 것들이 가뭇없이 녹아들고 속절없이 절여지던 시간 

 

맵기만 해 날 울리던 고추 맛의 기억과

알싸하고 아릿한 고통이던 마늘 생강의 날들

그 시간 속에서도'

때론 파처럼 싱그럽던

갓처럼 향기롭던

선물이었던 날들을 다 섞어 버무린다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음이여

몽매함으로 얻은 난마 같던 날들도 다 나로구나

 

갈피마다 기쁜 사연을 채워 넣고

켜켜이 앙금이던 흔적들은 지워내며

추스르고 다독여 오래 인내하면

항아리 속 김장처럼

발효와 숙성을 거친 깊은 맛으로 익어 갈 테지

 

왜 사는지야 끝내 모르겠지만

따스한 시선을 지닌 낮은 사람은 꼭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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