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잎유홍초
호수공원을 걷는데 저만큼 나무 아래서 뭔가를 줍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도토리는 이른데 뭘 줍지?' 갸웃거리며 보니 벌써 도토리를 줍고 계신 것 같다. 두어 알 이른 도토리도 눈에 띄고
불룩 조끼 주머니를 채우고 계시던데 마나님께 칭찬을 받을까? 혹 쓸데없는 일감 만들었다고 지청구나 듣지 않을까?
왠지 저분은 그렇게라도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고 싶었을 것만 같았다
그분의 삶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비약인가는 모르나 내게도 머잖을 씁쓸한 노년의 삶이 그려졌었고
호수공원 폭포 근처엔 그런 분들의 지정석(?)이 있다
낡은 의자 몇 개, 장기와 바둑판 그리고 꽤 많은 늙은 남자들의 모습이 늘 보인다
하릴없이 남은 생을 소진한다는 건 얼마나 지독한 고문인가
호기로웠던 시절 그들 시대가 그랬으니 누구나 집에선 목소리 큰 남자였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 목소리 유지하며 군림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몸이야 고될지 모르나 평생 흙을 일군 분들은 움직일 수 있는 한 흙을 가까이하며 그래도 한 몫하고 살고 있음을 느끼며 살 텐데
그럴만한 땅 한 뙈기 없는 도시 노년의 삶이라니ㅡ.ㅡ;
비록 그렇게 거둬진 수확물은 도시로 나간 자녀들 차지라도 기꺼이 나누며 그로 인해 당당한 삶이 아닐까 싶다
비 오는 날 미끄러지며 팔로 짚는 바람에 팔목에 깁스 하게 된 친구가 있다
그녀 왈 걷다가 미끄러져 다칠 거라곤 생각도 안 해봤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너무 화가 난다고
스스로 화가 나 견디기 힘든데 딸은 갱년기라며 약을 드시랬다고ㅎㅎ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확대해석해 스스로 늙었단 생각은 하지 마라며 위로했지만 우린 이미 지나가던 개도 안 쳐다보는 나이를 먹었다
화장을 안 하면 칙칙해 초라해 보이고 그게 짙어지면 역겨운 나이 ㅡ.ㅡ;
앞날을 생각하면 재미있을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아찔해진다
일을 만들자니 겁나고, 무료한 시간 보람 있는 일을 찾자니 마뜩잖고, 그렇다고 이제껏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겠다고 무턱대고 하는 귀농 같은 것도 탐탁지 않고
드디어 개미의 노동과는 무관하게 그늘에서 노래나 하던 호시절(?)은 가고 준비 안 된 겨울을 맞는 베짱이의 시간이 도래하는가
멀잖은 남편의 퇴직, 괜스레 숨이 가쁘다
새팥
달개비
배롱나무
꼬리조팝나무
얼마 전부터 호숫가에 저렇게 시화전을 흉내 낸(?) 시화전이 열리고 있다. 지나는 길이니 당연히 시선이 갔는데
시 동호회 같은 거면 그나마 고개 주억거리며 그러려니 했을 터
그런데 ㅇㅇ문인협회(고양시를 넘어서는 전국 규모), 무슨 시 창작 협회에 소속된 시인들의 작품이란다
무슨 넘의 사회가 이렇게 시인만 양산하는겨??
이름 옆에 시인이란 칭호가 버젓이 붙어 있으니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당당히 등단한 사람들일 것이다
다 읽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러니 안 읽은 작품 중엔 내 가슴에 확 들어올 문장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저분들 모두를 폄하할 마음은 없다
오늘 얼핏 본 건 벚꽃이 후루룩 진다는 표현이었다 물론 표현은 자유다
그러나 이형기 시인의 하롱하롱에 꽂힌 나는 그 후루룩에 아연실색하였고 자꾸 시어터져 버릴까를 생각하던 김칫국을 마신 듯 목에 뭔가가 턱! 걸리는 기분이었다ㅡ.ㅡ;
내가 쓴 글이 시라는 이름을 입고 저기 저렇게 전시되면 좋을까?
oh! no~ 난 세상눈이 참 무섭다ㅡ.ㅡ;
그런 이름은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절로 찬사가 나오는 글을 쓰는 분들이 세상 도처에 많다는 걸 알기 때문
그러니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시인이란 영광스런 이름을 갖게 되었더라면
남들보다 더 보고,
남들보다 더 겪고,
누구보다 더 고뇌해서
세상 단 한 사람의 가슴에라도 깊이 꽂히는 순전한 그런 글을 낳아주길 감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