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그 단조로운 소묘

해 저무는 山寺에서

binjaree 2016. 10. 11. 09:57






  우습게도 이름 없는 절로 찾아 들어가 공양주 보살이나 하며 살아볼까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자식들 어미 없어도 될 만큼 다 컸었고 내가 애면글면 움켜쥐었던 세계가 다 헛것만 같아 주저앉고 싶었던 날들이었을게다 그 즈음...


문화강좌를 듣듯 이웃 절에서 열리던 불교대학도 수료했건만 내 안에 스민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불교신자도 아니고

더구나 삼라만상 잠을 깨는 3시 이전부터 움직여야 할 공양주 보살이 나 같은 올빼미과 인간에게 가당키나 할까

내 게으름은 나도 잘 아니 그건 잠시 생각으로만 그쳤었고 허방다리를 걷는 듯 내딛는 걸음조차도 자신이 없던 시절도 갔다

'그래 가자 가보자 흐릿해진 시선이나마 무디어진 가슴으로나마 자주 휘청일 걸음이나마'

그렇게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체 욕심에 욕심을 더해 하룻날엔 버거운듯한 먼 길을 꽃을 찾아 나서고 있다

정갈한 절 집을 찾아 오르노라니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친절하신 이웃님께 상세한 지도까지 받아 나선 길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이 익는...눈 비도 글 읽듯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 수 읊어 지나가시는...

유안진님의 시 한 구절 생각나는 안동을 지났고 청송, 영덕, 영양, 봉화,영주까지

곳곳에 붉게 사과가 익어가는 게다가 강원도 버금가던 산 첩첩 고장들을 주마간산 스쳤었다

영덕 해파랑길을 2km쯤 걸었고 경관 뛰어난 청량사까지 둘러봤으니 하룻날에 아주 흡족한 나들이가 되었다


꽃을 찾아 나선 길이나 늘 꽃은 덤이더라

처음 지나 본 옥계계곡은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네 싶으리만큼 경관이 뛰어나 나 태어난 이 땅의 비경을 새삼 알게 되어 흐뭇했다

검푸른 물결 넘실대던 영덕 바다는 또 어떻고

그 길에 해국은 심어 가꾼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지천이어서 떼어놓는 발걸음 아쉽기만 했으나 어쩌랴 도착지점에서 기다릴 기사님(?) 생각도 해야지

더구나 늦어 내심 그냥 가자고 해도 할 수 없지 했던 청량사까지 가준다니 감읍했고 ㅎ


도착이 이미 늦은 시간이라 경내는 인적 드물어 더더욱 좋았다

산사음악회가 열린다는 절 그럴 때 꼭 한 번 오고 싶었으나 머니 마음으로만 있었는데 이렇게 오게 되네

추색 짙은 계절이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이만으로도 족하다

언젠가 산행 땐 들리지 않았던 산꾼의 집도 들려 약차를 마시고 굳이 챙겨주시던 위 사진에 솟대도 고맙게 받아왔다

내가 그곳의 주인으로 알던 이대실님은 이미 작고 하셨다더라

지금 계신 분은 시인이시라던데 며칠 후면 나온다는 시집 한 권으로 찻값과 솟대 값을 대신하고싶다

뉘라서 지나는 객에게 약차 공양 하는 일이 쉽기만 할까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나도 극구 사양일 터이나 베푸는 일에도 야박하기만 한 내가 돌아봐지네


아~ 이렇게 올 한 해도 꽃을 찾아 삼만리(?) 잘 살았다

사는 경기권은 물론이고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까지... 돌아보면 꿈 같은 시간

이 기억을 가슴에 품으면 꽃이 없을 겨울도 한결 따뜻하리라












































청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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