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그 단조로운 소묘

雜談 2

binjaree 2016. 1. 27. 19:04

 

 

 

 

 

 

 

#1.  한참 전에 선배님의 제안으로 잠깐 걸었던 행주산성 둘레길입니다

북한산을 가자며 연락을 주셨는데 겨우내 꼼짝 안 해 평지 걷기도 힘들어요란 말로 엄살을 떨곤 북한산 대신 나서본 길이었어요(뭐~ 엄살도 아니었어요 에효~@@)

한 바퀴 다 걸으면 약 3km나 되려나요 오가며 늘 보던 행주산성인데 둘레길이 있단 것도 처음 알았었고요

작은 동산같은 산이지만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돌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밥을 먹기위해 깨어 있는 것처럼 정말 밥만 끓여내는 날들입니다

책도 전혀 안 읽히고 그 좋아하던 드라마나 영화도 보게 되질 않아요

갈수록 픽션이 좋지 않네요 이건 또 무슨 증상인지

하지만 좋은 증상이 아닌건 분명합니다ㅠ.ㅠ

 

 

 

 

 

 

 

여긴 지인의 제안으로 드라이브삼아 나섰던 교동도 입니다

배를 타야 갈 수 있던 곳인데 이젠 저멀리 보이는 다리 덕분에 육지같은 섬이 되었습니다

 

#2. 그땐 그랬었지

 낮에 아래 글을 읽다 보니 미국 서북부에 계시는 교아님이 때아닌 물난리를 겪으셨단 걸 알았어요

한겨울에 폭우며 물난리라니 얼마나 고생이 심하셨을지 미루어 짐작만 해봅니다만 문득 오래전 겪었던 물난리가 생각나기에 댓글로 적다 길어져 이곳에 적어봅니다

별것도 아니니 그냥 패쑤~ 하셔도 되어요 ㅎ

 

자란 곳이 한강변이라 어릴 적에도 물난리를 보긴 봤어요

우리 집 뒤에까지 물이 차 어둠 속에서 보따리를 인 사람들이 걸어 나오던 풍경도 봤고 한강으로 돼지가 떠내려가더란 이야기도 들었었지요

중학교 첫 여름방학 땐 학교가 침수되어 교실에 생긴 검은 띠(물이 찬 흔적)를 보았고 책, 걸상을 운동장으로 들어 내다 닦기도 했었고요

20대 어느 날엔 한강에 있던 다리를 걸어 건너며 황톳물이 질풍노도처럼 굽이치며 흐르던 것도 오래 서서 본 기억도 있습니다

 

예전 서울의 대표적 침수지역이 망원동과 장안동 지역이었지요

그 장안동 살 때 였어요 둘째아이를 가져 만삭 일때 1984년

이젠 이름조차 잊어 검색을 해보니 열대태풍이던 소형 태풍 준(june)이 중국 상륙후 온대저기압으로 바뀌며 방향을 틀어 폭우가 내린거라고 되있네요

비가 며칠을 내린건지 기억은 안나는데 온동네가 물바다였어요

전기는 당연히 끊겨 밤이면 암흑이었고 버스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 갇혔었지요 우린 다행히 방은 침수가 안되었지만 재래식이던 부엌 부뚜막을 넘어선 물은 방까지 10cm정도나 남았었나 그랬어요 들어오기 일보직전

공무원인 남편은 연일 비상근무로 볼 수 없었고 안집 아저씨가 이부자리며 텔리비젼등을 그나마 더 높은 다락으로 옮겨주셨지요

그렇게 이삼일이 지났나?

어두워질때 돌아온 남편을 따라 바로 옆 장독대를 올라 담을 넘어(마당이 더 낮아 거긴 허리까지 물이 찼어요)허벅지까지 빠지는 깜깜한 골목을 나왔었지요

남편은 두 돌이었던 큰애를 무동을 태우고 전 만삭인 몸으로 치마를 걷어 올리고 ㅎ

큰집에서 이틀인가 보내고 물이 빠졌단 이야길 듣고 돌아왔는데 온동네가 전쟁터 같았어요

골목마다 젖어 못쓰게된 가재도구며 옷가지 침구등이 산을 이루고 창고에 두었던 연탄은 무너져 내리고

서울 골목길을 스티로폼으로 배를 만들어 다녔으니 참~

그나마 우린 방에까진 물이 안들어와 큰 피해는 없었는데요 그 많던 쓰레기를 어떻게 치웠을지

 

아무튼 난생 처음 수재민이었던 그때 나라에선 집집마다 10만원을 주었고 모포도 주었어요

뿐인가요 북한에선 동포애를 발휘해 쌀이며 옷감을 보내와 그걸 배급받았고 ㅎ

쌀은 너무 오래되어 밥을 지으면 맛이 없어 담갔다 가래떡을 했는데 그것도 맛이 없었대요

그런데 우린 예비군 훈련 받기 싫은 남편이 뭔 짓을 해놓은건지 주민등록이 그곳으로 되있질 않아 하나도 받질 못했습니다 ㅎ

 

옆집에 또래 이웃이 살았는데 물이 차긴 거기도 마찬가지

우린 그나마 안집 마루에 있던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그 집은 마당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어요

물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데 화장실은 급하고 요강을 사용했대요

그러다 그 집도 피난을 갔는데 혹 방에 물이 들어와 요강이 엎어지는 사고가 생길까봐 그것을 노끈으로 둘둘 묶어 장롱위에 올려두고 집을 떠났단 이야길 듣고

아직 20대 철없던 우리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었지요

기록을 살펴보니 수재민이 30만명이 넘었다는데 유독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집이 많았던 장안동

제가 다니며 피해상황을 살펴보진 않았었지만 오죽했었을까요

그 동네는 이삼년쯤 뒤 또 한 번 침수를 겪었는데요 그땐 지하가 있는 이층에 살때라 지하에 세 살던 분들이 우리 마루로 짐을 옮겨 놓는 정도에 그쳤었고요

 

지금은 배수시설이 잘 되어선지 서울에 침수가 된단 말 오래 못들었지만

장안동 그곳을 떠날때까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불안해 잠을 못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불보다 무섭다는 물,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던 그때가 기억나 한겨울에 때아닌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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